죤 하이드 선교사

오늘은 기도하는 하이드라는 별명이 붙은 죤 하이드 선교사님(1865-1912)의 전기의 일부를 발췌해서 나누겠습니다. 내용은 좀 길지만 많은 은혜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비밀은 기도실에 있었다.
 
시알코트 집회(인도 펀자브 지방의 큰 부흥을 가져온 집회) 당시, 남자용과 여자용 기도실이 따로 있었다. 그것에서 밤이나 낮이나 중단 없는 기도가 이루어졌다. 남자와 여자들이 따로 기도 모임을 가졌으며, 경험 있는 두세 명의 기독교인이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와주었다.
 
때로는 여느 기도모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기도를 인도하기도 했고, 침묵 기도를 드리거나, 각자의 마음에 있는 제목을 놓고 개인 기도를 하기도 했다. 선교사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사람들을 기도실로 데려와 기도해 주면서, 그들의 영혼을 빛 가운데로 인도했다.
 
시알코트 집회에 나타났던 능력은 기도실의 기도 덕분이었다. 당시 처음 그 집회에 참석했던 선교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배를 드리면서 좀 불편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집회 2일째 되던 날 내게 오더니 집회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지도자들과 설교자들이 기도실에만 하루 종일 숨어 있을 것이 아니라 강단으로 나와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권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기도실에 가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몇 번이고 그렇게 하려다가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뒤였다. 그는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띠고 와서 말하기를, “아세요? 저는 이 집회의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 기도실에 있더군요. 저런 모습은 난생 처음 봅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함께 그가 받은 은혜와 그리스도에 관한 새로운 비전에 관해 담소를 나누었다.
 
그 기도실은 하이드를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시던 장소였다.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 처음 몇 날 밤을 지새웠던 사람이 바로 하이드였다. 하지만 곧 그의 사랑하는 친구와 형제 맥셰인 패터슨도 그 기도에 합세했다. 나는 전에 하이드에게 어떻게 이렇게 기도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 날 아침인가, 성경 학교에서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전날 밤을 꼬박 새우면 메시지를 준비했어요. 다음날이었습니다.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 밤을 온통 새웠는데. 이제는 나 자신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날 받을 은혜를 위해 밤새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준비가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 기도를 하게 된 것이지요.”
 
분명히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 밤을 꼬박 새우며 기도할 생각을 갖게 하신 것이 틀림없다. 그는 한번 철야기도를 하고 나니까 너무 좋아서 다음날 밤에도 다시 철야를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와 합세했다. 그들 가운데는 한동안만 기도하고 간 사람도 있고, 함께 꼬박 밤을 새운 사람도 있었다. 그는 항상 성경 봉독이나 설교, 또는 집회 강연 등을 위해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종종 설교자 자신을 준비하는 것도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도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알코트 집회가 있는 동안,유럽인들은 선교 기숙사 학교에 투숙하고 있었다. 그 기숙사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건물이었기 때문에, 침대가 서로 너무 가까이 놓여져 있어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그 방은 예배가 끝나고 다음 예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당시 내 침대는 하이드와 그리스월드 박사의 침대 사이에 놓여져 있었는데, 하이드가 침대에 와서 눕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이드는 기도실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되면 그는 급히 달려들어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때의 시간은 동이 튼 직후였다. 내가 초타-하즈리(이른 아침 식사)를 가지러 갔다 다시 돌아올 때에도 여전히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기도회와 오전 예배를 마치고 11시가 되어 돌아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정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12시 30분에 다시 돌아와 나는 웃옷을 벗고 쉬면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런 뒤, 나는 오후 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차를 마시고, 다시 오후 5시 예배를 드리고 다음 번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때가 오후 6시였는데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 나는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를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면, 주변이 이토록 시끄럽고 사람들이 항상 들락거리는 데다 여기저기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서 기도를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생각이었다.
 
약 30분이 흐른 뒤, 그는 고개를 쳐들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침대에 걸터앉아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가 대답하기를, “말씀 드릴까요, 저는 비전-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았습니다!” 라고 했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비밀스런 처소에서 나온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은 내게 그리스도에 관한 새로운 비전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말을 할 때,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때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그토록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이 사실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하이드가 그분을 내 앞에 높이 들어 세웠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믿어야 했으며 내 마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찼다. 그것은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나는 내 죄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천한 고난을 당하시게 했다는 생각에 수치스럽고 슬픈 생각이 들어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의 모습이 내 앞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날 저녁 하이드가 나를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보게 만들었던 그 순간이 그대로 다시 재연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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