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원한 삶의 한 과정

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 교회 성도님이 자신의 시누이라며 여자 한 분을 교회로 데리고 왔다. 그는 교회에 기거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말할 때는 간단한 위 수술을 해서 신앙심을 갖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동기가 어찌 되었든지 병든 영혼이나 몸이 교회에 깃들기를 원한다면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가 거처할 병상을 만들었다. 병이 아니면 이렇게 누추한 곳에 올 이유가 없다고 그의 눈과 행동이 말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병상에 누우며 교회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남편은 삼성전자의 간부이고 자신은 강남의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것도 말했다.

먹은 것이 자주 체해서 병원에 갔다니 위암 말기일 뿐 아니라 암세포가 임파와 간에까지 전이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위 절제 수술은 물론 했지만 병원에서 한 달을 더 살지 못한다고 사형선고를 받았단다.

자신이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니까 죽음이라도 평안히 맞으라고 그의 올케가 우리 교회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둔 암 환자라고 하면 교회에서 거절할까 봐 병증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거절하지 않아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는 정도였다.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 만한 모든 것을 갖춘 37세의 여인, 그는 그동안 모아 놓은 것들을 다 두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 많아 억울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병을 얻은 것도 남편 때문이라고 원망하며 죽음이 두려워 파르르 떨고 있었다.

성경 욥기에 보면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입에 생긴 침조차 삼킬 수 없다는 말씀이 있다. 언제 어떻게 생기는지도 모르게 생기고 윤활유처럼 삼켜지는 침에 대한 고마움을 수십억의 생명 중에 몇 명이나 느끼고 있을까?

나는 생수를 앞에 놓고 그와 함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으로 물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음식인 물을 삼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날 그는 300cc의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 이튼날엔 강판에 갈은 오이즙 두 개 분량을 먹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거듭될수록 그의 식단은 시금치국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두 달이 되니 그의 머리카락이 까맣게 나기 시작했다. 목욕도 갈 수 있게 되었고, 봄에는 복직을 하겠다고 준비중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가발을 쓰고 병원에 다녀오더니 짐을 챙겨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내가 몸을 더 추스르려면 한 달 정도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다.

그랬더니 그동안 내가 준 음식이 암에 다 안 좋은 것들이었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의학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에게 몸을 맡긴 것이 두 달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는 떠났다.

나는 단 한 번에 병에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다. 다만 질병이 있으면 치료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주셨을 것이라는 인생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믿을 뿐이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병든 영혼을 사랑하며 그 영혼에 맞는 정성을 다할 뿐이다.

그가 간 자리를 망연히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그 정성을 돌에 쏟았으면 벌써 돌 위에 싹이 돋았을 거예요. 저렇게 가면 더 좋지 뭘 그래요. 그 고생하면 돈이 나와요, 칭찬이 나와요? 오늘부터 잠이나 푹 주무세요”라고 나를 도와 더 정성을 쏟으며 밤마다 기도하고 그를 간호해 주던 성도님이 부아가 나서 말했다. 그분은 남편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후 암으로 앓는 사람들을 마음을 다해 돌보아 주고 있었다.

그가 떠난 지 두 달 후 강남 성모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임종 직전의 부름이었다. 분홍 한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아 병이 나을 수 있었는데 그 사랑을 자신이 버렸다며 뼈아픈 후회를 했다고 우리에게 돌아오고 싶어서 집 주변의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마침내 주님의 사랑을 만났다는 것이다. 남편도 같이 교회에 나간다니 두 달 간호 대가로는 최고가 아니겠는가?

그는 우리가 불러 주는 찬송 소리를 들으며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남편은 아내가 소중이 간직했던 종이 한 장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그가 우리 교회에 처음 온 날 내가 그에게 써 준 글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원한 삶의 한 과정입니다.”

그토록 죽음 앞에서 파르르 떨던 그의 입술은 살며시 미소를 머금은 듯하여 영원한 삶을 소유한 평안을 나에게 소리 없이 전하고 있었다.

유정옥 사모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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