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와 만나는 시간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성령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1 제자 “주님,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피조물도 나를 방해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로 가려면 제게는 아직도 더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있으면, 내가 자유롭게 주님께 날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날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내게 비둘기와 같은 날개를 주어 내가 날아가서 안식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더없이 순박한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초월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신성한 곳에 미칠 수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명상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죽을 운명에 처한 피조물로부터 자신을 온전히 분리시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영혼을 더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사람 이 그 영혼이 추켜올려지지 아니하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해방되지도 못하며, 또한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하지 못하면 그가 아는 것이 무엇이든, 그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오직 한 분이시며 무한하시며 영원한 선이신 분 이외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작은 자로 머물러 있을 것이며, 낮은 곳을 헤매고 다닐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은 무엇이든지 헛되며,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깨우침을 받고 믿음이 있는 사람의 지혜와 교육을 받고 연구를 하는 학자의 지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노력하여 얻은 가르침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서 흘러내려오는 가르침이 훨씬 더 존귀합니다.”
3 “깊은 명상을 간구하는 사람을 많으나 정작 그들은 명상을 위해 필요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아의 완전한 죽음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표적과 감각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명상에 큰 장애가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는 그렇게 많은 노력과 걱정을 쏟아 부으면서도 우리 내면에 관하여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기에, 우리는 영이 무엇인지, 어떤 영이 우리를 인도 하는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영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4 “슬프게도 우리는 명상을 짧게 끝내고 바로 밖으로 나가서는 우리가 하는 일을 엄격하게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감정을 어디에 두는지도 주의를 기울 이지 않으며, 순수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패한 탓에 큰 홍수 창6:12, 7:12참조가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내면의 감정이 더 부 패했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행동, 곧 내적 힘이 없는 행동도 또한 부패하기 마련 입니다. 순수한 마음만이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5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는 눈여겨보면서도 얼마나 가치 있는 행동을 했는지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가 용감한 사람인지, 부자인지, 용모가 훌륭한지, 똑똑한 사람인지, 좋은 작가인지, 좋은 가수인지, 또는 좋은 일꾼인지에 대하여는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얼마나 순수한지, 얼마나 참을성이 있으 며 유순한지, 얼마나 믿음이 있고 영적인지에 대하여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사람의 외모에 관심을 두지만, 은혜는 내면적인 것을 귀히 여깁니다. 인간의 본성을 잘못 파악하기 쉬우나 은혜는 하나님에게 희망이 있기 때문에 속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