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도 사랑이다
요한계시록 3장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곱 교회 중에 주님께 아무 칭찬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은 교회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오늘은 이들이 책망 받은 이유를 살펴보고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사데교회를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온전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온전한 것을 전혀 찾지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들의 행위는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해결책은 단순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에 하셨습니다. 하지만 교회마다 회개의 내용이 다릅니다.
사데교회의 회개는 받은 것과 들은 것을 다시 잘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돌이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이제껏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정리해보면 신앙생활은 들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것들이 있는데 마치 아무 것도 듣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것은 아무리 열심을 낸다고 해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핑계라는 것이 가능합니다. 알면서 몰랐다고 할 수도 있고 들어 놓고 못들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는 어떤 핑계도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보시기에 사데 교회는 분명히 제대로 된 말씀을 받았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들은 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멀쩡하게 했는지 주님께서는 이들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삶에도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서 전혀 말씀과 상관이 없는 것을 핑계로 대는 일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법을 어겨 놓고 한국의 법을 가지고 핑계를 댄다고 용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법을 가지고 주님께 불순종한 핑계를 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들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절대로 적당히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자기의 현실을 정반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는 가난한데 자기들은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는 맹인인데 자기들은 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색맹인 분들에게 제대로 색을 보게 해주는 안경이 있습니다. 이 안경을 쓰기 전까지 이 분들은 세상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삽니다. 자기들이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경험을 해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안경을 쓰는 순간 전혀 울 것 같지 않은 남성분들도 눈물을 흘립니다. 처음에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광경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 다음에는 그 동안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며 억울함의 눈물을 흘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기들을 부자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자기의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첫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다 이 일곱 교회 모습들 중에 하나 이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데교회처럼 듣고도 못 알아들은 척 불순종하거나 아니면 불신자가 보아도 뻔한 불순종을 본인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조금도 돌려 말하지 않으시면서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하지만 그 적나라한 책망 뒤에 우리에게 가장 소망과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라” 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셨습니다. 사데 교회는 그래도 그 중의 몇 명은 주님께 합당하다는 말씀이라도 들었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호되게 책망하신 후에 그 이유가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소망이 됩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각자가 너무 다르니 한심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다 나름대로 자기가 잘 하는 것만 생각하면서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잘못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교회도 주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뭐라고 서로를 욕하고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입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자기에게 하시는 말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힘써 회개하되 라오디게아 교회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 주시는 사랑이 소망이 되어 힘써 우리의 삶을 돌이키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