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알자 (2) 소유를 다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천국

마태복음 13장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어떤 기독교인은 불신자보다 더 천국에 관심이 없습니다. 천국은 나중에 지겹도록 살 곳이니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농담을 가장한 진담을 하는 신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교회만 다니면 당연히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책임은 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교회 문턱을 낮게 한다는 이유로 기독교 교리에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 만한 것들을 다 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독교 교리 중에 삭제한 말 중의 하나가 오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2년 전에 한국에 돌아간 부목사님 차를 팔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차를 사는 사람이 우리가 될 수 있으면 빨리 팔아야 한다는 것과 파는 사람이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 좀 심하게 차 값을 깎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픽업하러 온 날도 머리카락 같은 스크래치를 핑계로 백 불을 더 깎으려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만불이 안 되는 차 값의 몇 퍼센트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20퍼센트를 깎으려고 했다면 제 안에서 “이 사람 도둑놈 심보네” 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절반을 깎으려 했다면 실제로 그 말이 입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영생을 ‘공짜’라고 가르치면서 성도가 해야할 일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헌금만 하면 되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 결과 복음의 다른 부분들은 그저 하면 좋고 안 해도 회개만 하면 되는 것처럼 가르치면서 교회 유지에 가장 필요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만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짜’라는 것은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그 몸으로 대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은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옥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에 서 있던 우리를 천성 가는 길로 옮겨 주신 것이 주님의 공로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천국은 자기의 일생을 내놓고 사야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이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사람이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요즘 이상하게 ‘본업과 부업’이라는 설교와 간증의 제목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에 자세히 듣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우리 믿는 사람의 본업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본업은 성도입니다. 똑같은 집에 살아도 개는 개로 살고 사람은 사람으로 사는 것처럼 똑같은 세상을 살아도 불신자는 불신자로 성도는 성도로 삽니다. 전 재산을 판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로 살기 위해 어떤 것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포기라는 말만 놓고 보면 희생인 것 같지만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보화가 묻힌 밭을 정말로 보았다면 그 포기는 희생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이자를 바라고 은행에 저금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고, 수확을 바라고 씨앗을 뿌리는 것이 버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천국을 위해 자기 인생을 내놓는 것은 영원을 향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이 투자는 예금과 같은 투자가 아니라 농사와 같은 투자입니다. 돈을 은행에 맡겨 놓으면 저절로 이자가 붙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기의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에서 “너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원래 제물은 죽어서 제단 위에 올라가는 것인데 우리는 살아서 제단 위에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는 바울의 삶은 육신적으로 인격적으로 날마다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은 삶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정말 육체적으로 죽을 것 같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가슴 아파했고, 어떤 성도들과 동역자들은 그의 고통을 즐거워하며 그를 물어 뜯었습니다.

예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할수록 이런 종류의 고난이 더 거세집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은혜 받을 때 자기 인생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사람과 그 중에서 실제로 인생을 드린 사람의 수를 비교하면 백 명의 한 명도 되지 않을 겁니다. 인생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계속 드려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주님께서는 보화의 비유와 비슷한 진주의 비유를 또 들으셨을까요?

밭에 묻힌 보화는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주는 일평생 진주 장사를 했거나 진주를 많이 다뤄본 사람만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주의 비유는 이미 믿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비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 안에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난무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이 말씀의 홍수 속에서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전까지는 애매하게 자기의 삶을 드리던 사람이 확실한 진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진짜 자기 삶 전체를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느정도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죽어가는 죄인들보다 조금 나은 것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정말 내 인생을 다 드려서 영생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의 인생을 다 드려야 합니다. 설교할 때마다 “꼭 사역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전재산을 다 팔아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정말 주님의 일에 전재산을 사용하고 자기 일생을 바쳐 제대로 된 사역자만 될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것이 더 복된 것입니다.

믿음생활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하나님 주시는 최고의 복을 받기 위해 자기의 전부를 드려서 온전한 영생을 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님의 온전한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보화를 보여주셔서 얼마든지 일생을 드리게 하소서
  2. 영생을 사는 고난의 값을 비싸게 여기고 아끼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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