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향해 직진하라
창세기 38장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사람이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단 1초도 어떻게 해볼 수 없고 누구도 주어진 시간 외에 여유분의 것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은 요셉을 여호와께서 형통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려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주인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해서 감옥에 갇힌 처지였습니다. 겨우 간수장에게 잘 보여서 감옥의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것을 누가 형통한 인생이라고 하겠습니까?
시편 17편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형통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아니 부끄럽게도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런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는 동안에 자기 사는 걱정을 하지 않고 자녀에게도 물려줄 것이 있다면 세상에서는 꽤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노아 때의 사람들을 뭐라고 표현하십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으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것들을 죄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의 골자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며”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 먹고 마시며 결혼하는 인생 다음에 무엇이 올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홍수의 초반에도 비가 그친 후에 할 일을 계획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악한 사람의 정의인 것입니다.
요셉이 형통한 사람인 것은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감옥 안에 있지만 그의 미래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던 그의 삶이 참된 형통의 삶입니다.
마태복음 12장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래를 보게 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지혜로운 말을 듣고 자기의 미련한 생각을 고칩니다.
우리도 만약 이 모든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잘 먹고 잘 살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에 자기 삶을 다 바친다면, 요셉과 다윗과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여왕의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잘 잘못을 가리실 필요도 없는 뻔한 악인으로 멸망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통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불만스러울 수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 추레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주님의 삶이었지 않습니까?
6년 전에 미국 생활 23년만에 처음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녀왔습니다. 장관은 장관이었지만 8시간 운전을 해서 갈만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험하고 어려운 길을 찬송하며 나갈 만한 영원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오직 그 곳을 향해 직진하는 삶이 바로 형통하는 삶입니다.
1.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천국을 향해 직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