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한 성전에 열매를 채우라
마가복음 11장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일주일 간 하신 첫번째 일이기 때문에 좀 더 깊은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한 번 성전에 들어가셔서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성전이 성전다워지는 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성전의 변천사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성전은 출애굽기에 완성된 성막으로 이동식 텐트와 같은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성막이 완성되어 하나님께서 그 성막에 임재하시고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시작하시는 것으로 결말됩니다.
그리고 그 성막이 솔로몬의 때에는 성전으로 변합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그대로 완전히 이동식으로 지었습니다. 반면에 성전은 그 안의 기구들은 명하신 그대로 썼지만 겉은 다 돌로 만들어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은 400여년 후에 바벨론의 침략으로 무너져 버립니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 때에 유다의 포로들이 돌아와 이전 보다 작은 규모의 성전을 다시 짓습니다. 이 것을 제 2차 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것이 헤롯성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제자 중 한 사람이 성전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20여년 전 즘에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그 작은 성전을 엄청난 규모로 증축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진짜 성전이신 거지요. 성전을 풀어서 이야기하면 거룩한 집이라는 말인데, 왜 거룩하냐 하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완성할 때도 성전을 완성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충만해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성전 그 자체이십니다
이제 성전은 누구입니까?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삼위 중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인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성전의 원래 목적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목적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몰아내야 합니다.
세상을 다 내려 놓고 살기는 불가능하지만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방해하는 것들은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이 문제들이 다 달라서 뭐라고 특정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몰라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결하기를 정말 원하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지난 죄를 씻을 수 있도록 피를 흘려 주셨고 무엇이 깨끗하고 무엇이 더러운지 다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반드시 정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정결하게 해야 하길래 우리가 다 안다고 하는지 주님께서 다음에 하시는 일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이 다음에 무화과 나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분명히 무화과가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닌데 열매를 찾으십니다. 열매가 없는 것을 아시고 나무를 저주하시니 나무가 말라 버립니다. 마른 나무는 어떻게 됩니까? 불살라 버립니다.
무화과 나무가 생각을 할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주님께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지금은 제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때가 아닌데 왜 제게 이런 벌을 주십니까?” 무화과 나무가 지옥에 간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겠지요. 주님께서 그렇게 지으셨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세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도적 같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하지 못한 때에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서 열매를 찾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가서 열매를 내놓지 못하면 말라 불태워지는 가지가 된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무화과 나무와는 다르게 주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가 무엇일까요? 사랑의 열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전체가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붙은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는데 그분은 사랑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려고 부르셨는데 우리는 계산적이 되지 맙시다. 성전을 청결하게 해서 천국 가려고 하는 것도 믿음이지만 우리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 성전다운 성전이 있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도 “무엇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면 남의 죄를 덮을 뿐 아니라 나의 죄도 덮어집니다.
주님께서는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비판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완벽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남을 비판하지 않고, 죄 짓는 사람 부족한 사람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를 불쌍히 여기고 감싸며 기도해 준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나의 부족함과 더러움을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했고 우리의 사랑이 그 구원을 완전하게 해 줄 겁니다. 우리가 그 사랑으로 성전이 되었다면 미움보다 그 성전을 더럽힐 것이 없고 사랑 없는 것보다 그 성전을 초라하게 만들 것이 없을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고난의 길을 걸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간입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고 뜨겁게 사랑해서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고 주님이 임하시고 다스리시는 성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사랑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되게 하소서
- 주님께서 언제 오셔서 열매를 찾으실지 모르니 작은 미움과 불편함이라도 치우게 하시고 겸손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