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여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며칠 전에 노인들을 주로 캐어하는 요양원에서 일하시는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한 말 중에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는 노인들인데도 정말 자기 인생을 의미 있게 정리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다른 노인들과 재미있게만 지내도 괜찮으신 분이에요. 어떻게든 동료 노인들과 일하는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것을 낙으로 삼는 분들이 많아요”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살던 방식을 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입니다. 만약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일평생 마음으로는 자기에 대한 고민이 있던 사람일 것입니다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늘 솔로몬이 “너는 청년의 때에” 라고 한 말은 이삼십 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생각할 수 있고 자기 인생을 발전시키며 새롭게 할 능력이 있을 때’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할 수 있을 때’ 라는 뜻입니다.
나이가 얼마가 되었건 아직 변할 마음이 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청년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믿고 더 이상의 새로운 변화를 멀리하는 사람은 노인입니다. 노인의 특징은 ‘완고함’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청년과 노인으로 갈라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기를 점검하고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성경의 말씀들이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는 사람은 그 나이와 상관 없이 청년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도 없고, 성경의 이야기가 예전 역사 이야기나 철학책처럼 들리는 사람, 또 은혜 받아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누구나 저런 때가 있는 법이지…” 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을 신앙의 철부지로 내려다 보는 사람들은 그 나이와 상관 없이 ‘완고한 노인’입니다.
지금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상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을 때 후각과 미각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어떤 분들은 그 때 잃은 감각을 아직도 100퍼센트 되찾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가 “맛을 못느끼니 사는 재미가 크게 줄더라”는 것입니다.
미술에 심취된 사람이 시각을 잃으면 거장들의 그림을 앞에 갖다 놔도 즐겁지 않습니다. 음악에 심취된 사람이 청각을 잃으면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바로 앞에서 그 사람만을 위해서 연주해 주어도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세상의 재미라는 것은 육체가 살아있고 모든 감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왜요? 사람은 다 죽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전도서의 시작을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말로 시작한 것은 육체의 삶의 결론입니다. 죽음의 날은 모든 것이 헛되게 변하는 날이고 해가 떴다 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날입니다.
그런 우리 인생에게 솔로몬이 던지는 충고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저 헛된 존재로 만드셨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사람은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자신을 지으신 존재를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지요. 왜일까요? 자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지어졌다면 그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처럼 엄연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고 없는 분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우리는 다 청년입니다. 아직 생각하고 자기 삶을 고칠 수 있는 때에 더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분을 경외하며 그것을 따라 자기의 삶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의 뜻대로 살아 그분이 예비하신 참 축복을 받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청년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 주님을 알수록 그 마음과 삶이 변하는 성도의 삶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