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신 주님 위해 피를 흘리자
로마서 14장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에 주인이라는 개념은 그 종의 모든 것과 그 생명까지 소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삶을 송두리째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핏값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저 종교적인 호칭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외식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이 사람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부른다 하더라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계약을 맺어서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주종관계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장이나 직원인이나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둘 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계약을 맺은 것이니 돈이 주인인 것이지요. 그러니 돈의 문제가 생기면 사장이 직원을 자르거나 직원이 그냥 그만 두는 일이 당연합니다.
어떤 성도의 스토리가 생각이 납니다. 10년 넘게 자기 가게에서 일한 직원이 있는데 정말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도 없이 가게를 안 나온 겁니다. 전화를 해도 안 받길래 알아 봤더니 나오는 길에 차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제게 그 이야기를 한 때가 사고가 난지 일 주일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가서 보니 상태가 어떻든가요?” “바빠서 아직 못 가봤습니다.” 그 다음 주에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씁쓸했습니다.
성도는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병든 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런데 10년을 넘게 그 가게에서 일한 직원이 목숨이 위태롭게 되어도 찾아가 보지도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 직원은 돈을 벌어주는 부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자기가 그렇게 바로 떠나면 그 직장이 어려워도, 자기의 빈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큰 어려움을 주어도 사람을 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미련 없이 이직을 해버리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 주인이나 동료가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믿는 사람에게 얼마나 이를 갈겠습니까?
이런 성도들에게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의라든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뭔라를 손해보는 희생이라든지 하는 말들은 그저 성경에 나오는 좋은 말일 뿐입니다. 오직 상대방을 이용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 뿐이니 돈이 그들의 주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소유이고 심지어 우리의 죽음까지도 그분이 다 값을 치루고 사신 것이 되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사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제대로 알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주인과 종의 관계는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죽은 후에는 남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지으시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죽음까지 다 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주님께 내어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얼마나 온유하신 주인이십니까? 이 주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주님께 드립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조금 드려놓고 주인 앞에 거들먹 거립니다. 레너드 레븐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흘려주신 주님께 우리는 첫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과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사랑에 감사해서 사랑으로 하는 일 자체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수고했지만 가시적인 결과를 전혀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헌신에 온전한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리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분께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전한 만족을 얻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우리 삶을 내 놓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쁘게 그 무한한 영광과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처럼, 참된 믿음은 변질되었고 오도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외친다면 그는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먼저 외면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눈감아주시려고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혹시 온몸을 흙탕물에 담그고 있으면서 얼굴만 깨끗한 것이 우리의 현실은 아닌지 기도하며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음악 평론가가 아무리 신랄하고 정확하게 남의 연주를 평할 수 있다고 해도 연주자로는 10점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성도의 죄, 심지어 사역자들의 단점이 보인다고 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최하위 프로팀에서 후보선수를 하는 사람도 동네 조기축구에서는 에이스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마저 어두운 이 세상에서 다른 성도들보다 조금 더 뭔가를 한다고 주님께서 믿고 쓰시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을 때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어야 죽어서도 영원히 주님의 것이 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히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사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주님의 소유 되게 하소서
2. 나도 피를 흘려 주님의 몸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