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떠넘기려 하지 말라


 이사야 1장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현대 기독교의 치명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는 자기가 할 일도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하나님께 다 떠넘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자기 삶에서 밀어내면서 그것을 듣기 좋게 ‘맡겨드린다’고 말합니다.
 
물론 정말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죄사함입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맡겨야만 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이것을 믿지 못합니다.
 
반면 신자들의 문제는 죄사함을 믿은 다음에 발생합니다. 오늘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보십시오. 자기를 씻으며 깨끗하게 하며 악한 행실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고 학대받는 자와 고와와과부를 돕는 일은 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신자들은 이 일을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굶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먹을 것을 나눠주라는 말씀인데 “저 사람 배고픈 것 같으니 하나님께서 먹여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자기 배만 불립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손을 통해 가난한 자를 먹이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우십니다. 성도의 힘과 성도의 가진 것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인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가 이런 희생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께 떠넘기면서 “맡겨 드립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불순종을 가리려는 위선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온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두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 단계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지옥의 형벌을 면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슨 수를 써도 이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해서 ‘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거듭난다고 합니다.
 
둘째 단계는 그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희생과 순종으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눠주시는 것을 ‘상’이라고 합니다.
 
‘상’이라는 말 자체가 개인의 공로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때 각 사람이 한 일을 ‘공력’(개역한글) 또는 ‘공적’(개역개정)으로 번역했는데 원어의 뜻대로 하면 ‘공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첫 단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지옥의 형벌을 면하는 구원은 ‘받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구원은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분명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변론할 수 있습니다. 이 변론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에 대해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홍 같이 붉은 죄라 할지라도 눈 같이 희게 해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를 용서하는 것을 몇 벚까지 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충분합니까?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지고 죄를 지을 때 정말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가 그 죄를 변론하는 일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전제가 있습니다. 정결한 삶을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 죄를 끊을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이해해 주세요”라는 식의 마음가짐으로는 눈과 같이 희게 되자마자 다시 주홍같이 붉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두에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할 일을 하나님께 떠넘기려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진심으로 죄를 버리려는 마음이 없고 말씀에 순종할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많은 경우에 식생활을 고쳐야 합니다. 당뇨에 걸리면 당분이 많은 음식을 피해야 합니다. 간질환에 걸리면 술 담배는 물론이고 인스탄트 음식도 피해야 합니다.
 
정말 병을 고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입맛에 맞지 않아도 식단을 조정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먹는 즐거움을 이기지 못해 육신의 건강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는 그런 건강정보가 잘못되었다고 부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먹는 즐거움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기독교는 이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에 엄연히 계시되어 있는 하늘의 상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불순종을 불가능으로 바꾸었고 죄를 삶의 필수요소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의 공로에 떠넘겨 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 싫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워낙 많다보니 이런 불순종이 신학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코에 호흡이 있는 자는 수에 칠 가치도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는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죄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죄를 죄로 인정하며 정결하게 살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살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꿀 때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길도 열립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순종해서 그 안에 약속된 복도 있는 그대로 다 받으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내가 해야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분명히 구별하게 하소서
2.             말씀을 변역하려 하지 말고 나를 고쳐 회개하려는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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