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불쌍히 여기실 때

애즈베리 부흥의 또 다른 특징은 인위적인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기 때문에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프로그램도 유명 강사의 설교도 없었습니다. 찬양팀도 어제 나눈 대로 어지간한 미국 교회에는 다 있는 수준이었구요.

물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을 통해 일어나는 부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시대, 소망 없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절망한 우리 마음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 이 부흥이 주는 소망은 정말 특별합니다.

자격 없고 능력 없어도 그냥 죽게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손에서 난 부흥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절망과 어둠 가운데 있는 여러분! 우리는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소망으로 삼고 열심히 기도하며 그 날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소망도 없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저는 개인적으로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예정론이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말에 의해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정론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우리 구원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께서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진리입니다. 예정론이나 만인구원설 등의 신학적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감히 만날 수도 없는 유명한 의사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약을 지어줬는데 그것을 먹고 산다면 그것은 그 의사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약을 먹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은 병자가 선택한 것의 결과입니다.

약을 먹고 산 후에 내가 산 것은 내 손으로 약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배은망덕입니다. 반면에 약을 먹지 않고 죽은 것을 약을 지어준 사람이 떠먹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원망한다면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행위도 구원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선을 행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배은망덕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은혜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다만 정말 은혜를 받았다면 행위의 변화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과 사는 모양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총각 때 제가 살던 모습과 결혼한 후에 제가 사는 모습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가 사는 모습은 아이를 가지기 전과 그 후가 완전히 다릅니다. 더 이상 둘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내의 성격이 지금과 달랐거나, 아이들의 성격이나 재능이 지금과 달랐다면 저는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누가 함께 한다는 것과 그 함께 하는 사람의 성격은 삶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물며 천지를 지으신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사는 모습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죄인인 사람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을 만족시켜 드릴 수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길 뿐입니다.

일평생 자녀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말못하는 아기일 때입니다. 오죽하면 그 때 예쁜 것으로 평생할 효도를 다한다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특별히 아기가 아플 때는,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너무 불쌍해서 목숨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제 딸 아이는 난산의 영향으로 세상에 처음 나와서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는데, 아내는 퇴원을 했지만 아기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침 아내가 퇴원하고 제가 처음으로 면회를 간 시간이 링거 바늘을 바꿔 꽂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것이 혈관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 저기 바늘을 꽂는데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아빠의 마음으로 팔이라도 잘라 주고 싶었습니다.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아마 이 마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마음과 조금이라도 비슷할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죄에 빠져서 속절없이 멸망하고 있는데 말못하는 아기 같이 하나님 앞에 비명만 지르고 있었겠지요.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그 품의 생명인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오직 한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을 한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완벽하려고 할수록 더욱 부족함만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긍휼을 핑계하며 편안히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힘써 선을 행하면서 느끼는 부족하고 악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자백하며 그분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달음박질이 있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허공을 치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을 행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심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가난하고 상한 심령을 둘 다 가지려고 온 힘을 다하십시오.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1. 가난하고 상한 심령을 잃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소서
  2. 구원 받은 증거로의 거룩하고 정결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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