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이 갈 곳은 두 곳 밖에 없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회였다. 그들이 다락방에서 취한 모든 조처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결행한 것이었다. 이들은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예수님에 의해 보냄 받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에 적합한 사람들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또한 그들은 ‘뉘우치는’ 교회였다. 다락방에 모였던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였던 영적 불충으로 인해 무척 괴로워하였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을 실망시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들 모두 예수님을 저버린 사람들이었다.
그 다락방이야말로 눈물로 물든 진정한 통곡의 벽이 되었으리라! 그곳보다 더 깊은 눈물의 골짜기가 또 있었을까? 그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그 열흘의 기간보다 천사들이 인간들의 쓰라리고 통렬하고 짭짤한 눈물을 기억의 병에 담느라 더 분주히 움직인 적이 또 있었을까?
다락방에 모였던 이 사람들은 자신 들의 겉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금을 강기슭의 버드나무 가지 위에 걸어 놓았다(시 137:2). 그것
이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언제인가 고대의 신비주의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갈 곳은 두 곳 밖에 없다. 한 곳은 잿더미이고 다른 한 곳은 천국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 두 곳 가운데 어느 한 곳에 있을 때만 안전하다.
성령을 축구하던 이 사람들은 복된 잿더미, 곧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 회개하면서 주님의 능력을 갈망하고 그 영광을 뵈옵는(욥 42:7) 황금보다 더 귀한 복된 잿더미에 거하였다.
다락방의 그들은 ‘자인하는’ 교회였다. 다락방에 모였 던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의 신학적 잣대를 옆 사람에게 들이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옆 사람을 비난하는 말을 내뱉지 않았으며, 약속된 능력의 도래가 어떤 사람 때문에 방해 받을지도 모른다고 섣부르게 단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 모두 자신들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백성들의 합당한 모습을 예시하는 고전적인 모범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 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이 부르짖지 않았다면 분명 마비 되었을 당신의 팔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의 파동을 보내주신다. 그들은 그렇게 주님을 기다리면서 힘을 내었다.
레너드 레븐힐 목사님의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