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은 당신이다
이사야 1장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영혼에 뭍은 얼룩입니다. 그래서 죄는 표범끼리 반점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처럼 같은 얼룩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같이 할 수 없는 더러운 것입니다.
제사는 이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씻음을 받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에서 바치는 제물은 제사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물론 성전에 나와서 드리는 제사의 순서로 보면 끝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스마트 폰을 오래, 또는 많이 사용하면 처리속도가 느려지고 때로는 모든 기능이 잠시 정지되는 일도 생깁니다. 그것을 더 이상 참기 어려우면 초기화, 영어로는Factory Reset을 합니다. 그러면 처음 공장에서 출시된 상태로 돌아갑니다.
제사를 잘 묵상해 보면 이 스마트폰 초기화와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그 죄를 제물의 피로 씻는 것은 그 사람의 상태를 초기화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죄 때문에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끊어졌던 교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스마트 폰을 초기화 하는 것은 더 잘 쓰기 위해서이지 초기화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동안 잘못된 방식으로 써왔던 것은 고치고 전화기에 해가 되는 앱 같은 것은 다시 설치하지 않습니다.
속죄의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를 통해 죄씻음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죄씻음은 소용 없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유다의 백성들은 제사가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씻고 홀가분해지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증거로 제사를 드리고 나가자마자 바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이 마당만 밟았다는 것은 제물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의미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수송아지와 어린 양의 피가 아니라 그 피로 죄를 씻고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이 당시의 유다 사람들과는 다를까요? 신약시대 제사의 제물은 어린양 예수님이시라는 면에서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 피로 죄를 씻고 바로 다시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면에서는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제물은 바로 성도의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거룩한 향기를 세상에 풍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와 남북 전쟁 직후의 교회는 가난하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 교회를 섬기면서도 세상에서는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성도가 많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기독교인은 어느 정도 가산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노골적으로 기독교인을 미워합니다.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는 교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힘을 가졌지만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에서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성도로 부름 받은 것을 중대한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적어도 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목적이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순전해야 합니다.
손해가 나거나 자존심이 상하면 화를 내고, 화가 나면 막말을 하고,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이나 편법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등, 양심이 예민한 불신자들도 부끄러워할 일들을 편하게 행하는 성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제사는 이런 죄의 유혹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옛 모습이 드러나는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때마다 영원한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새롭게 하며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예물은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사는 목적이 아니라면 귀하신 어린 양의 피를 헛되게 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가는 걸음이 성전 마당만 밟는 헛된 걸음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 아름답게 기억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룩한 삶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성도 되게 하소서
- 변하지 않은 삶 때문에 주님의 공로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