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경외하기 (2) 악을 버리라
시편 34편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어제는 악한 말과 거짓말을 금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 나라 말에 “말이 쉽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로 하면 참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말을 조심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은 말로는 너무 간단합니다.
하지만 간단할수록 실제 삶으로 옮기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마치 숟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것이 젓가락으로 먹는 것보다 수십 배 어려운 것처럼 우리의 육신의 본성은 악을 버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떠나는 것은 두 가지 다른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탐욕이나 음란 같은 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선한 일에 점수를 주신 후에 악한 일들에 대해서 감점을 하신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씀이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저 악을 행하는 자는 그 악을 떠나고 지난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으라고 말씀할 뿐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죄와 싸우며 하나님의 선을 행하려 노력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다 구원하셨는데 왜 또 저렇게 어려운 삶을 살까? 그냥 자유하면 되는데…” 라고 말합니다.
저도 예전 감리교와 장로교를 다닐 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한 번도 거기에 대해 의심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정작 성경에 그런 말씀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없고 서신서의 주된 내용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에 그런 생각을 해볼 만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구절들만 따로 떼어놓았을 때의 이야기이고 전체를 함께 생각하면 결국 구원 받은 사람은 죄에 지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결론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자라고 불리는 어거스틴은 무척이나 방탕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18세의 나이로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을 낳았습니다. 19세 때부터는 극장 문화에 빠져서 살았고 20대 초반에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졌습니다. 그 후에는 세상의 철학에 빠져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거듭난 것은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와 암브로시우스라는 당시의 유명한 목회자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는 거듭난 후 이전에 즐기던 모든 일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살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찬송시를 쓴 죤 뉴턴은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사람을 사고 파는 사람은 그 인격을 악마에게 저당 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백한 것은 “나 같은 쓰레기(의역)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랍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거듭난 후에 계속 노예를 사고 파는 일을 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피를 흘려서 나를 악에서 구하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계속 담대히 악을 행한다는 것처럼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개가 자기가 토한 것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악은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토하여 버린 것들입니다.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다시 죄를 지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토사물처럼 더럽게 여겨져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일은 어렵습니다. 무작정 싸워서 이기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토사물 처럼 여겨지게 해달라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서 내 인격이 주님의 인격처럼 될 때 죄가 더럽게 느껴지게 됩니다.
“왜 자꾸 같은 죄에 빠질까?” 절망하시는 분들이 많을 줄 믿습니다. 그 원인은 그만큼 죄에 찌들어 살았기 때문이고 마음은 거룩한 삶이 원이로되 육신은 계속해서 죄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두의 문제라고 해서 죄에 빠져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넘어질 수 있지만 넘어져서 그대로 있으면 안 되고 다시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아마 우리는 이 싸움을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죄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동시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은 끝났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 다 사단의 공격입니다.
오직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끝까지 이 싸움을 싸우는 것이 그 나라 갈 때까지 우리를 생명 있는 주의 사람으로 지켜줄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승리입니다.
영원히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범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2. 범죄에 눌려서 주님의 손을 놓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3. 끝까지 넘어져도 일어나서 최후의 승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