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으로 천국을 사자


 야고보서 2장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어제는 구제와 선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전히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구제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구제라고 생각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헐벗은 사람에게는 옷을 입혀주는 것이 행함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도의 말은 전혀 그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영혼의 양식과 옷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인데 순종하지 않아 배고프고 헐벗은 영혼에게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 내 영혼은 배부르고 풍족하다”라고 말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입니다.
 
즉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배고픈 영혼에게 먹을 것은 주지 않으면서 “배부르지?”라고 약올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행함 중에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도 당연히 포함되지만 그것은 많은 일 중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18절의 말씀도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이 행함이 있는 사람을 믿음은 없고 행함만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것처럼 그런 말은 없습니다. 분명히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하는 말은 믿음이 없어도 행함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믿음을 보이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진통제는 통증이 없어져야 효능을 입증할 수 있고, 발모제는 머리털이 나야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처럼 믿음은 오직 행함으로만 증명이 됩니다.
 
말만 있는 믿음은 성도의 믿음이 아니라 귀신의 믿음입니다. 귀신들도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구원 받는다는 사실도 알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 믿음을 행할 기회가 없습니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믿음의 표현이 주로 말이라는 것입니다. 간증 문화가 발달이 되었습니다. 워낙 굉장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어지간한 스토리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합니다. 소박한 믿음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100년 전에는 자기 동네의 교회만 다닐 수 있었고 그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통수단이 발달하자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어느 날 녹음이라는 수단이 등장하자 교회가 아닌 곳에서도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하자 어지간한 교회의 예배는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 대확산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이제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시청하는 행위를 예배라고 인정해 줘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행함’은 희생입니다. 희생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지만 한 가지만 점점 더 싸지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행함이라는 대가입니다. 몇 십리 길을 걸어와야만 했던 예배, 밤잠 새벽잠을 못자며 드렸던 철야기도 새벽기도들이 이제는 손 안의 행위로 바뀌었습니다.
 
박해의 시절에는 목숨을 건 대가를 지불해야 드릴 수 있었던 예배가 이제는 잠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서도 참여할 수 있는 값싼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시지 않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의 중심, 그리고 그가 그것을 위해 지불한 대가에 의미를 두십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온라인 예배가 없었어도 예배에 나오지 못할만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모이는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행함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는 믿음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값어치 있는 물건을 싸게 사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최고로 치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하늘의 보배는 절대로 값을 치룬 만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건짐을 받은 구원도 우리는 한 것이 없어서 거저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값을 치루셨는데 그것이 어떻게 거저입니까?
 
지옥의 고통은 은혜로 면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영광은 행함이라는 대가를 지불한 만큼만 얻습니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맙시다. 삶의 선택의 순간, 분노의 순간, 계산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것이 대가 지불입니다.
 
꼭 선교지에 나가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남들 잘 때 무릎 꿇고 선교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행함! 화가 나고 누군가가 미워질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며 용서하고 그 사람을 섬기는 행동!  이런 것들이 다 천국의 영광을 살 수 있는 천국의 통화(通貨)입니다.
 
말 뿐인 죽은 믿음에서 행함이 있는 산 믿음으로 변합시다. 귀신도 할 수 있는 말만 하지 말고 산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인 행함으로 천국의 보화를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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