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하던 사람들이 폭도가 된 이유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오늘 본문에서 종려나무를 흔들며 열정적으로 주님을 환영하던 사람들 중에는 며칠 후에는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는 폭도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열정적인 신자가 하루 아침에 얼음장 같이 변하거나 믿어봐야 소용 없다며 교회를 떠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이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주님을 맞이 하던 사람들이 며칠 후에 폭도로 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이 변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까지 이스라엘에는 400여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했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많은 이적까지 행하시자 이스라엘의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절정을 이룹니다. 사람들인 자기 겉옷을 펴서 나귀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들이 주님께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에 그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을 보게 됩니다. 유월절 아침이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 전 날 밤 속절없이 잡히셔서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들이 바랐던 메시아는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다윗의 때와 같은 강대국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이적들은 그들의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들이 가장 미워하는 로마의 총독의 법정에 서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가 치민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병을 고쳐주지 않았다고 떠나는 사람, 비즈니스가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이 말씀에 아멘 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님 안에서 바라는 것이 많은 만큼 내 신앙도 위험해진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자기는 세상에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잠재의식 속에는 “예수님은 믿지만 난 적어도 이정도는 살아야 해” “예수님을 믿어도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것은 못 참아” 등의 생각이 숨어있습니다.

최근에 자신이 절망을 느낀 적이 있거나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과 자존심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것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성도 다운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닥칠 때마다 “주님 저 힘들어요”라는 기도 대신 “제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얼마든지 이런 문제들을 이길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이런 마음을 하나씩 드릴 때마다 우리 안에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던 이들이 폭도가 된 또 다른 이유는 유혹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에게 예수님 대신 살인 강도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청하도록 권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법은 멀고 칼은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하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무리들은 이 권력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닥치게 될 일들이 두려웠거나 이 말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요구할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이유 때문에 믿음을 포기하거나 시험에 드는 일이 많습니다. 이것은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앞에 사탕을 하나 놓고 엄마가 올 때까지 이걸 먹지 않고 있으면 큰 선물을 준다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수록 참지 못하고 그 사탕을 먹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믿음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당장 믿음대로 살면 손해를 보는 일이 있습니다. 또 작은 불순종 하나만 하면 그보다 훨씬 큰 이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단이 우리 안에 속삭이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이거 가지고 주님의 일 하면 되지”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 일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려고 주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은 전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넘어가다 보면 그 죄에 발목이 묶이고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께 돌아갈 때 그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종려 나무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하던 무리가 며칠 만에 주님을 죽이려는 폭도로 변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의 현실입니다. 끝까지 안심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합시다.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그것을 주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끝까지 주님 붙잡고 이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끝까지 자기 믿음에 만족하지 않는 겸손한 믿음을 주소서
  2. 세상의 꿈과 육신의 정욕을 버려 우리 안의 주님의 나라가 더 확장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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