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소취대(捨小取大)인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인가
창세시
28장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 왜 이삭은 왜 자식들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할까요?
창세기 6장을 보면 사람의 수명이 120년으로 줄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3장 6절은 만약 누가 그들을 꾀어 다른 신을 섬기자고 유혹하면 아내라 할지라도 불쌍하게 보지 말고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도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라반이 야곱과 자기의 두 딸과 헤어지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을 언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내를 맞이해야 했기 때문에 자기 고향 땅의 처녀와 결혼할 것을 원한 것입니다.
불신자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먼저 믿게 되면 가정에 불화가 생기지요. 그렇다 할지라도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 신앙 때문에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고의로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 배우자가 여전히 우상을 섬기거나 세상을 사랑하면 발에 족쇄를 차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조금 더 깊이 적용한 말씀이 고린도 후서 6장 14절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결혼이고 그 다음은 동업입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믿지 않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십시오. 믿지 않는 친구와는 그냥 도와주는 것 외에는 돈거래도 하지 마십시오.
그저 정직하고 관용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그들을 대하고 조금이라도 까다롭거나 완악한 모습을 보이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성도 답게 사십시오.
28장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여 고난에 휘둘리지 맙시다.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사람이 길을 잃을까봐 걱정해본 적이 있습니까? 사정이 있어서 돌아가든 길이 막히든 그 사람이 모는 차에서 내리지만 않으면 그 사람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그 약속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한 곳에 가게 됩니다. 그곳은 야곱에게는 가나안 땅이고 우리에게는 천국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약속 안에 머물러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가 기뻐하시는 일은 가까이 미워하시는 일은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멘하고 결단해도 대부분 돈 앞에 무너집니다. 돈의 유혹과 하나님 말씀 사이에서 계산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사소취대(捨小取大)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반대가 되는 의미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작은 계명 하나 어기고 세상의 큰 것을 얻게 되면 사소취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소탐대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작은 계명 하나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큰 것을 잃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사소취대입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해놓고 사소취대(捨小取大)했다고 착각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7-9)
이것이 최고의 사소취대(捨小取大)입니다.
29장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 내가 누군가에게 라반처럼 굴지는 않는지 혹시 나는 라반 같은 사람에게 의지해서 믿음에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남의 약점을 잘 이용하며 얼굴에는 철판을 깐 것처럼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 사람의 골수까지 빨아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반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는 20년 동안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리가 가축을 물어갔거나 심지어 새끼를 밴 양이 낙태한 것까지도 야곱에게 책임을 물어 배상하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자기밖에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감정, 자기 재산, 자기 가족 등등 ‘자기’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기 사위보다는 자기 재산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라반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런 성향의 사람이 많습니다.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당연한 것처럼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 앞에서 사람이 바뀌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런 행동이 물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당신이 이런 사람이 아닙니까? 물질은 하나님이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많이 가지면 뭘 할 수 있습니까? 더 쾌락을 즐기든지 더 자랑하든지 아니면 쌓아 놓고 만족하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바라고 행한다면 당당하게 기도하고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라반 같은 사람에게 소위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그 사람이 아니면 먹고 살지 못할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물질을 공급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아니라는 진리는 이런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환란이 다가왔는데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물질에 넘어질 것이 훤하게 보입니다. 자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하지 마시고 물질의 유혹을 이기는 훈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혹시라도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고 있는지 보게 하시고 끊을 수 있다면 과감히 끊게 하소서
- 우리 눈을 열어 하늘의 영원한 것과 세상의 썩을 것을 제대로 비교하게 하소서
- 물질의 욕심이라는 사슬을 보게 하시고 믿음으로 끊게 하소서
오늘은 31-32장을 묵상합니다.
- 31:1-2절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야곱의 공은 생각하지 않고 그가 가진 재물을 보고 질투합니다. 왜 그런지 묵상하고 자기에게 그런 모습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 31:19 라헬은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우상)을 훔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했을지 생각해 봅시다.
- 32:6 금의환향인줄 알았는데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옵니다.야곱이 에서와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하나님 앞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지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