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3

데살로니가 전서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것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것은 종교생활이고 믿음의 대상이나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이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룩이란 말을 생각하면 주눅부터 들게 됩니다. 자기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는 것이 엄두조차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오늘 바울은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거룩하게 하신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망이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것이 자신이 얼마나 거룩함을 열망하고 있는지를 재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자기 믿음을 잽니다. 성도들은 예배에 나오는 햇수나 기도시간 성경을 읽은 분량 등을 믿음의 척도로 생각하고 저 같은 목회자들은 교회 규모가 자기의 믿음인 것처럼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순서만 바로 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예배에 나오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교회가 부흥한다면 말이지요.

어떤 분이 환상 중에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때 주님께 지금 가장 기뻐하시는 종이 누구냐고 여쭈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름 모를 섬에서 열 명도 안 되는 교인들을 붙잡고 수십년 째 목회하는 종을 보여 주시더랍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주님의 눈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조그만 섬에 같혀서 전혀 늘지도 줄지도 않는 그 적은 사람들을 붙잡고 그들의 영혼이 불쌍해서 떠나지도 못하는 자신의 삶에 열등감과 패배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기뻐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 영혼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삶 자체가 실제로는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거룩함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싫어하셨고 세상의 모든 죄를 담은 그 잔을 마시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새벽에 나오신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어떤 날은 기도하려는 마음이 가득해서 나올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정말 오고 싶지 않은데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올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분을 따라가다 보면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하는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부담감에라도 그 길을 가게 됩니다.

예전 같으면 쳐다도 보지 않을 곳이지만 이제는 주님을 믿기에 가기 싫어도 가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열매입니다. 우리로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 주신 것이지요.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악한 본성입니다. 그것을 억지로라도 이길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 주시고 내 추함을 다 씻어주시네. 이것이 주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거룩입니다. 오직 미쁘사 그 시작하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위로와 소망으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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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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