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불의로 진리를 막는자 내가 될수도 있다
로마서 1장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묵상할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흔한 실수가 어떻게 보면 가장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이 실수는 성경을 읽을 때, 자기는 구원 받은 의인이기 때문에 저 죄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저도 최근에 죄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성경을 보니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더 냉정하게 볼수록 주님의 말씀을 뜻하신 그대로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하나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도 불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불의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은 악한 불신자들에 대한 내용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 시대의 신자,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적용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불신자들의 마음에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알만한 성경 지식과 판단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불신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처럼 우리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불의를 저지릅니다.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핑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그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과 지금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우리가 불의하게 산다면 얼마나 더 핑계할 것이 없겠습니까? 정말 심은대로 정확하게 거두는 것이 믿음이라면 내가 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심고는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일에는 소위 말하는 ‘어드밴티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학연 지연 혈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고, 직장이나 사업의 문제도 소위 말하는 ‘빽’이 있으면 불합리할 정도로 잘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보다 더한 ‘어드밴티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또는 ‘1인칭 시점’입니다. 자기에 관해서는 기분에 따라서 뭐든지 용서가 되고 뭐든지 좋게 볼 수 있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입니다.
문제는 심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1인칭 시점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시점을 가감 없이 알려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정말 그대로 살려고 힘썼는지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생각이 허망하여 졌다는 말에서 ‘생각’은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죄와 회개에 대해서 설교를 할 때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은 전혀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쟁은 주님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허망이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생각이 허망하여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이유를 대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이렇게 허망해지는 자신의 생각을 비추어주는 빛까지 더 희미해졌다는 말입니다. 깨끗한 방은 밝을 때가 더 좋고 더러운 방은 차라리 어두울 때가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한 마음은 빛이 비추이지 않을 때가 더 편합니다. 악한 것이 보이지 않으니 회개의 부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에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할수록 실제로는 더 미련해지는 것입니다. 미련한 생각과 눈을 가지고 있으니 점점 망하는 길만 선택하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의 죄에 빠질 때 조차 자기에게는 너무나 말이 되고 지혜롭게 느껴집니다.
어찌 보면 멸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멸망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성도는 혹시라도 자신이 이런 상태가 될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틈을 엿보는 악한 영들은 우리보다 훨씬 수단이 높고, 지치지 않으며, 경험도 풍부합니다.
오직 깨어있어서 스스로 충만하다고 느낄 때 더 두려워하며 주님을 향한 첫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온 힘 다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