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들을 귀, 부드러운 입술을 가지라

  1. 16:7 모세를 원망하는 것이 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이 말씀을 목사를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봅니다. 무조건 틀리는 말도 맞는 말도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를 대적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맞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미 자연현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이적을 셀 수 없이 경험했고 지금도 그들은 눈 앞에 구름기둥, 아니면 불기둥이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현재 있는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한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모세를 원망했지만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악계의 최전성기는 20세기 초였습니다. 지금은 미디어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목발을 집고서라도 노래 한곡 하는 것이 학생 100시간 가르치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대가들은 은퇴해도 학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만 당시에는 대가들이 은퇴하면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요즘과는 다르게 학생들은 선생님 집에 살면서 성악을 배우고 대신 여러가지 잡일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권한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말을 듣지 않는 제자들을 채찍으로 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유명한 선생님들 집 앞에는 제자가 되려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온갖 잡일을 하고 맞아가면서도 그 선생님 밑에 붙어있으려고 한 것이지요.

3년간 제대로 된 노래는 안 부르고 간단해 보이는 발성만 배워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오직 하나 그 선생님 밑에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보장되지도 않은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 놀라운 이적들을 보아 놓고서도 고통의 순간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광야생활의 시작이라 대놓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못하니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대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방자한 백성이 됩니다.

18장에서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하루 종일 재판하느라 피곤한 것을 보고 방백을 세워 백성들을 다스리라고 조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성도도 얼마든지 목회자에게 자기 의견을 전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넘쳐나다 보니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을 위한 원망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그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같은 말을 해도 원망하는 태도가 아니라 온전하게 세우려는 태도로 지혜와 사랑의 말을 합니다.

이것은 목사 뿐 아니라 모든 성도를 대할 때도 동일합니다. 원망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선한 마음과 부드러운 혀를 가진 온유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16:20,24 만나가 필요한 만큼만 내린 이유를 묵상해 봅시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 날’ 이라는 말은 이 시대라는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오늘이라는 뜻입니다.

만나는 매일 하루 먹을 분량만 내렸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먹을 분량이 내려서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만나를 먹는 이스라엘을 묵상할 때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당연한 진리 외에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안에는 시기와 질투가 훨씬 덜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옆집이나 우리 집이나 똑같은 장막입니다. 옆집 아침 상이나 우리 집 아침 상이나 똑같습니다. 더 많이 가져다가 쌓아 놓고 살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재주와 능력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옆집 남편은 (궁시렁 궁시렁)” “누구 아빠는 (궁시렁 궁시렁)” 하며 원망하고 비교하는 일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아마 여지껏 존재했던 사회 중에 가장 천국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날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그날 먹을 양식만 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나의 교훈만 제대로 마음에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은 넉넉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나만 먹고 사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깊이 묵상합시다. 일만 악의 뿌리인 물질의 욕심을 잘라내서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18:17,24 하나님의 대언자 모세도 장인인 이드로의 말을 듣고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을 세우는 과정을 보고 겸손과 지혜를 배웁시다.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남의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특히 자기보다 믿음이 없거나 아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분명한 모세는 절대로 자기 장인의 말을 듣지 않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오히려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에게는 남의 말을 듣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믿음이 좋다고 전지전능하지는 못하다는 말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귀가 열린다는 말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물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들을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지를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의 잘 섬기고 그분이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신앙을 배울 수는 없어도 더 효과적인 방법은 배울 수도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낮아지고 겸손한 것만큼 지혜로운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조언을 듣는 사람에게 더 좋은 말을 해줍니다. 눈빛만 봐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시 말해주지 않습니다.

먼저 성경의 말씀을 순종하고, 사람들의 말도 경청하고 구별할 수 있는 겸손한 귀를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부드러운 말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진심으로 일용할 양식만 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3. 겸손하고 지혜로운 귀를 주셔서 잘 분별할 수 있게 하소서

오늘은 출애굽기 19-21장을 읽고 묵상합니다.

  1. 19:8-11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지 묵상해 봅시다
  2. 19:21 이 말씀과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합시다
  3. 20:20 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그렇게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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