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묵상하라
로마서 2장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특권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특별한 권리는 없겠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어떤 특별한 집안의 자녀가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재벌가의 자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것은 몇십만 명의 한 명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집안에 태어났다는 것 만으로 엄청난 돈을 가지게 되고 많은 사람이 떠받드는 삶을 살게 됩니다. 또 권력까지 등에 업고 있어서 어지간한 범죄를 저질러도 가볍게 무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그런 차별이 있는 특권과는 다릅니다. 재벌가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그 집안의 핏줄로 태어나야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1.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2. 참고 하나님의 선을 행해야 누릴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살면서 아무 죄나 지어도 무마시킬 수 있는 권세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특권은 오히려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고 가장 낮은 곳을 하늘 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시편 89편 14절은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불의를 행하시거나 불의를 행하는 자를 그냥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그 보좌는 모래 위에 서있게 됩니다.
사단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이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비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공의를 바탕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멸망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아무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큰 모순이자 딜레마입니다.
지금 이 바이러스 사태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소중한 것인데 경제가 무너지면 그것도 나중에는 많은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무엇을 해볼 수 없는 것이 딜레마 중의 딜레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이렇게 해결 못할 딜레마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그 희생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한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죄값을 물으신 하나님의 공의에 피흘리신 죽음으로 답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엄청난 의미를 아는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 아니라 그 공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 보좌의 기초인 공의를 무시하고 죄 가운데 산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공의를 두려워 하는 것은 항상 죄와 싸우며 죄에 빠졌을 때는 빨리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실하게 영생을 소원합니까, 아니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천국에도 들어가는 특권(?)을 누리고 싶습니까? 아들을 내어주셔서라도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되었던 그 공의를 묵상하면서 아들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을 곱씹으시기 바랍니다.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소리가 강렬하게 심령을 때릴 수록 우리의 속사람은 한 겹씩 그 허물을 벗고 거듭날 것입니다. 온전히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