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말라 ( 창세기 9:20-23)
창세기 9:20-23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1.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한 함의 죄와 셈과 야벳이 축복을 받은 이유를 묵상해 봅시다
미국에 산지 3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영어가 편하지 않습니다. 가장 영어하기가 편한 상대는 다른 이민자들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니 문법이나 발음을 신경 쓰지 않고 뜻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편한 상대는 미국인입니다. 영어가 자기 말이니 콩떡 같이 이야기 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끔 마음이 곱지 못한 미국인들을 만나면 뻔히 알아들은 말도 못 알아 들은 척하는데 참 얄밉습니다.
가장 영어하기가 불편한 상대는 우리 나라 사람입니다. 영어 시험을 보던 버릇,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습성을 서로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영어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판단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면서 동시에 남을 판단하는 모순이 우리의 민족성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판단은 자기가 할때는 재미있지만 받을 때는 괴로운 것입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을 자는 것은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을 보고 어떻게 행동했느냐가 그 세 아들의 미래를 바꾸었습니다.
함이 가장 먼저 그것을 보고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알렸다는 말의 원어는 ‘떠벌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용히 형제들에게 알려서 수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게 아버지 노아의 흉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두 형제는 어떻게 했습니까?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부끄러운 노출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로 다가가 그것을 가리고 가릴 때에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렸습니다.
이 세 형제가 한 모든 일은 노아가 정신이 없을 때 이루어졌습니다만 노아가 깬 후에 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한 일을 알고 함은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되어서 자식을 저주할 수 있냐고 하는 분이 있겠지만 그것은 다분히 이 시대 영향을 받은 질문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부모를 무시하는 자식은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벌을 받거나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다른 사람, 특히 자기보다 위의 권세의 허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 영어로 gossip 이라고 하는 것만큼 돈 안들고 재미있는 일이 없습니다. 비싼 돈 들여 식당에서 밥 먹고 차 마시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남의 말입니다. 하지만 이걸 절제하면 복을 받고 즐기면 저주를 받습니다.
함을 보십시오. 가장 먼저 노아의 벗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가장 먼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흥미거리로 생각하고 다른 형제에게 떠벌려서 축복의 기회를 저주로 바꾸었습니다.
허물은 허물입니다. 잘못한 것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덮어주는 것과 손가락질 하는 것은 축복과 저주의 차이를 만듭니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하는 성도들이 자기를 속이는 일이 많습니다. 그것은 걱정을 가장해서 험담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들출 때 나의 허물도 드러나는 저주가 있고 남의 허물을 가릴 때 나의 허물이 가려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2. 홍수 때에 죽은 모든 것은 코에 호흡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 2장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과 더불어 묵상해 봅시다.
물은 몸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호흡기에 들어가면 생명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그래서 코에 호흡이 있는 모든 생물은 물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홍수에 다 죽었습니다.
홍수에 살아남은 생물은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짐승들 그리고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생물들 뿐이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도 결국 땅에 발을 붙일 곳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 코에 호흡이 있는 생물입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아라랏 산의 봉우리가 덮였을 때 죽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리 세상에서 날고 기는 재주가 있고 나라를 살 만한 재물이 있고 핵전쟁이 나도 끄떡 없는 지하벙커가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은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 뿐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모아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진리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 성도입니다.
3. 9장 4-6절의 피와 핏값에 관한 말씀을 아벨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 묵상합시다.
피를 흘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가인이 죽인 아벨의 핏소리가 살아 있는 가인의 인생에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 때문에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피의 값을 치루는 사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거듭나 예수님이 남겨놓고 가신 일을 하는 사람은 그 피에 담긴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핏소리를 무시하고 마귀를 따라 사는 사람은 그 피의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축복과 저주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피를 우리를 살려 자녀 삼고 신부 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가장 행복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1. 남의 허물을 가려 내 허물도 가리워지는 축복을 받게 하소서
2. 코의 호흡이 아닌 영의 호흡으로 세상의 환란을 이기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소서
3. 예수님의 피에 담겨 있는 엄청난 가치와 큰 사랑을 깨달아 주님 사랑하는 가장 행복한 성도의 삶 되게 하소서
오늘 읽고 묵상할 범위는 창세기 10-13장 입니다.
1.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삶과 비교해 묵상합시다.
2.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갈라져야 할 때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고 롯은 주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소돔을 골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했을지 묵상합시다.
3. 성경의 인물들이 첫 아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더하면 그들이 어느 자손까지를 보았는지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담은 노아의 아버지 라멕까지 직접 보았는데 그는 아담의 9대손입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노아는 누가 태어날 때까지 살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