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흠 없는 제물
레위기 1장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레위기는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 맞이하는 첫번째 위기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여러 번 읽다 보면 특별한 은혜를 깨닫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레위기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내용은 ‘제사’ 입니다. 제사를 다른 말로 ‘희생’이라고 하는데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생긴 문제를 예물을 드려서 해결하는 것이 제사입니다.
여러가지 다른 제사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딱 한 번 십자가에 자기 몸을 드리셨지만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마다 그리스도를 제물 삼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입니다. 제물은 죄 용서를 받는 대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은 좋은 것을 싸게 사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알면 어떤 값이라도 치루려고 하는 습성도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정성을 다해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 선심 쓰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교회가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고 가르치고 사람을 영혼으로 보지 않고 고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거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예배도 ‘나와 주는 것’이 되고 헌금도 ‘기부’가 되며 모든 봉사도 ‘자원봉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칭찬을 바라거나 오히려 교회가 자기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아무리 굉장한 일을 해도 다 ‘흠 있는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마음 가짐은 다 잘못된 믿음에서 오는 것인데 우리의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흠 없는 예물은 흠 없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사람만 흠 없는 제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다시 말해서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것이 흠 없는 제물이고 그 믿음으로 자기의 최고를 드리는 것이 흠 없는 제물입니다.
2장 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제단에 올리지 말지며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제는 곡식의 가루를 예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곡식의 가루는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잘게 부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성격, 계획, 자존심 같은 것을 가지고는 주님을 닮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제에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누룩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누룩은 부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없는 믿음을 있는 척, 작은 순종을 크게 순종한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온갖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 은혜를 받은 성도가 무엇을 한들 그 은혜의 억의 하나라도 갚을 수 있겠습니까? 말은 다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일 하나 해 놓고 엄청 뿌듯해 하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타락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대형교회의 목사님들 중에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던 분들이 많습니다. 변두리 지붕이 새는 낡은 교회 건물에서 하나님의 제단에 비가 샌다고 몇 시간씩 손으로 그 구멍을 막고 기도하던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타락했을까요? 믿음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부흥을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즐긴 것이지요. 믿음은 10인데 누룩을 넣어 부풀려 50을 만들었고 그 결과 믿음의 원래 모양조차 바뀐 것입니다.
타락한 종들을 성토하자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자는 것입니다. 원래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던 분들도 변하는데 그 믿음이 없던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처음 믿음을 가지고 변질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누룩 없는 소제입니다.
또 하나는 언약의 소금을 반드시 섞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소망, 영광의 소망이 없는 신앙생활은 지금 러시아의 남성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에 큰 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상을 바라는 신앙생활이야 말로 치사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1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12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이 것은 죄를 깨닫고 드리는 속죄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물을 번제단에서 불사르든지 아니면 기름과 피를 제외한 고기는 제사장들에게 주는 제사들과 다르게 속죄제는 제물의 모든 것을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야 합니다.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히브리서 13장 11절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속죄 제물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것으로 옛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곳을 비유하는 진영 밖에서 태우는 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죄 씻음을 받았으면 그 순간부터 그 죄와 싸우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완전한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힘입는 우리가 완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 흠없는 신앙생활입니다.
-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흠 없는 제물을 드리게 하소서
- 가감 없이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는 누룩 없는 제물을 드리게 하소서
- 약속을 믿고 소망하는 믿음을 주소서
- 옛사람과 싸워 십자가에 못박는 참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