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에 선 성도가 되자

“예전에는 세상이 교회를 우러러 보았는데 요즘은 교회들이 세상에 잘 보이려 안간힘을 쓴다”

하나님께서 일평생을 쓰셨던 한 목사님이 한탄하며 했던 말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성도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을 때에 그럴듯해 보여도 성도가 그 삶에서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교회도 세상과 구별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구원해야 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무거울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세상과 교회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것입니다.

그 선은 교리를 가지고 긋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 때 그 선은 저절로 그어집니다. 우리가 주님께 온전하게 속하면 세상과 교회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세상과 구별하는 선을 긋습니다. 첫째는 세상의 칭찬을 받아 선을 긋습니다. 세상도 인정할 만큼 선한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자는데 십리를 가주는 행동은 세상도 인정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귀에 들려오는 성도들이 세상을 사는 모습에 관한 이야기들은 선한 것보다는 불신자도 고개를 저을 만큼 악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28년째 미국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거짓말장이가 둘 있는데 한 명은 사역자이고 한 명은 자동차 딜러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들으니 그 자동차 딜러가 사역자가 되었는데 사역을 하면서도 자동차 딜러를 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일을 해서 결국 쫓겨났다고 합니다.

목회자인 제가 그 사람들을 생각해도 아직 씁쓸한데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그들에게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욕을 하겠습니까?

반면에 성도들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심장을 이식 받아야 하는데 순서를 기다리던 중에 자기에게 온 심장을 더 급한 사람에게 양보를 했습니다. 그럴 때 그 심장을 받은 환자는 물론이고 병원 관계자들까지 마음에 감동을 받아 기독교를 다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지게 됩니다.

성도가 세상과 자기를 구별해서 선을 긋는 두 번째 방법은 세상의 미움을 받아 선을 긋는 것입니다. 일부러 미움 받을 행동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살면 당연히 세상은 그 사람을 미워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주님을 미워해서 그분을 죽였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도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동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악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미워합니다.

친구들이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거지를 만납니다. 모두 다 그 거지를 외면할 때 한 친구가 친절하게 자기 먹을 것을 주면서 그를 도와줍니다. 그러면 나머지 친구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결과 그 도와준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하지만 미워하게 되기도 합니다. 왜요? 그 친구만 아니면 자기가 부끄러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큰 미움을 받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마귀의 영역에 직접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당연히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격렬한 반항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이 말씀에 달아봐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의 착한 행동을 문제 삼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이 싫어하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라면 이런 격렬한 반항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임무를 마치기 전에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증인의 삶이 먼저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명감 자체가 없거나 희미할수록 세상에 잘 섞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성도 여러분! 살면서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십니까? 그 이름을 증거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예레미야 20장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한 것은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선포할수록 세상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이름을 선포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더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 것이 증거하며 받는 어려움보다 훨씬 더 괴로운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밸리알이 조화할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의 자녀가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전혀 구별되지 않은 채로 그럴듯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성도답게 살다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 앞에 가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선한 삶으로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2. 예수님의 증인이기 때문에 받는 어려움이 있는지 우리를 살피게 하소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믿음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증인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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