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은혜! 값없이 주시는 선물
로마서 3장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은혜라는 말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대의 선물은 받으면 줘야하고 주면 받기를 바라는 거래와 같은 것이지만 선물이라는 말은 대가를 치루지 않고 자기 것이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바로 은혜입니다. 거저 주시는 선물인 것이지요. 그 선물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거저 받았으니 선물 주신 분만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람끼리도 참 많은 차이가 납니다. 아프리카에서 수십 년을 몸 바쳐 헌신하신 선교사님과 미국의 작은 교회에 평신도로 출석하시는 성도님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영생에서도 주님께 많이 다른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님과 성도님의 차이는 이 성도님과 지옥에 간 어떤 사람과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지옥자식이 천국자녀 되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없다면 일평생을 바쳐 선교를 했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 것이 없는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의 교만한 본성은 전혀 자랑할 것이 없는 데서도 자랑할 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자기나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일을 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죄를 짓지 않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사람은 – 사실 성수가 아니라 예배에 빠지지 않는 것 뿐이지만 –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자기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자기가 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게 다 자랑입니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람의 순종은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터전에 집을 짓는 것일 뿐입니다. 건축재료는 땅이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 중에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을 쓸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초기 암을 발견했다든지, 꽤 좋은 조건의 투자처가 있었는데 내 사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날 그것이 사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가슴을 쓸게 되는 일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을 쓸면서 감사하게 될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감사가 끊어졌다면 아마 그 사람의 마음 한 켠에는 자기가 무언가를 잘해서 또는 천성적으로 뭔가 다른 점이 있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교만한 생각이 마음 어딘가에 또아리를 틀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우리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은혜입니다. 한 것이 없이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예수 믿는 믿음 하나로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단순한 믿음을 단순히 받아들인 사람이 죄를 미워하게 되고 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의 신앙이 앞뒤가 바뀌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더 단단히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