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진짜 성도

(39) 진짜 성도

레위기 22장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   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더합니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언젠가는 죄의 값을 치루게 됩니다. 회개할 수 있지만 회개가 가능한 것은 영원하신 우리 주님께서 그 몸으로 죄의 값을 치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회개도 하지 않았는데 당장 벌이 임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그 값을 다 치루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성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회개의 제사를 드릴 때 예수님을 제물로 나갑니다. 그렇게 할 때 부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받기 전에 자기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그 말은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고 맞서 싸우기로 다짐하고 성찬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살피고 성찬을 받는 것입니다.

성찬은 자기의 믿음을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품고, 또는 악하고 추하고 탐욕적인 죄들을 포기하지 않고 성찬을 받는다면 그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품고 있으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집니다. 아무리 예배하고 기도해도 소용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러면 예배하고 기도해도 소용 없으니 안 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나는 그냥 지옥에 가겠습니다” 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하면 될 것 아닙니까? 

미움을 내려 놓고 탐심과 악한 쾌락을 내려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안 받아 주시면 나는 그냥 지옥에 가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난 성도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물을 대할 때 자기를 구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믿는 사람에게는 축복입니다. 그 때마다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하려는 자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을 닮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아는 모든 성도들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그 은혜를 맛보고 천국에 합당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장 24   너희는 고환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 

23절을 보면 다른 흠이 있는 제물은 자원제물로는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환이 상한 것은 자원제물로도 쓸 수가 없습니다. 

고환이 상했다는 것은 생식기능이 고장 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성도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묵은 닭’ 이라는 농담을 하는데 이것은 농담 거리가 아닙니다.

우리 중에 낭떠러지 쪽으로 가는 사람을 그대로 놔 둘 사람이 있을까요? 독이 든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사람을 말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지옥에 가는 것이 뻔한 사람들을 그대로 보고 있다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는데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고환이 상한 양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전도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다면 그 사람은 주님 앞에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성도에게 하나님 앞에 가치가 없다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겠습니까? 

전도할 마음은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환이 상한 제물은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전도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하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다시 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함께 하사 점점 혀가 부드러워지고 식었던 마음에 불이 붙게 될 것입니다.

24장 10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우리는 이 사람이 절반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절반은 애굽사람인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양다리를 걸친 성도의 비유입니다. 자기의 편의에 따라서 하늘에 붙었다 세상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지요.

이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가 심하게 손해를 보게 되면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 둘이 싸움이 붙었을 때 상대방이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지적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싸움에 지기 싫어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존심이나 소유를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지킨 자존심과 소유는 다 오물과 배설물이 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것은 영원한 보화가 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여 땅의 삶이 하늘에 쌓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죄를 없이 하고 그것과 싸우려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가게 하소서
  2. 복음을 전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이름 내 이름이나 세상의 소유와 절대로 바꾸지 않는 경건한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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