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명 중 40등
한 학년이 끝나는 날에 아이들마다 성적표를 내놓았다. 큰아들은 언제나 1, 2등 둘째는 3, 4등 딸아이는 9, 10등 막내아들은 40등! 그런데 문제는 이 성적표를 내놓으면서 조금도 미안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하는 막내를 남편은 아예 포기했는지 야단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성적표를 앞에 놓고 혼을 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40등을 하는 아들의 비밀을 찾을 수 없다.
아들의 비밀은 성적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기회를 보던 나는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갔다.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게 했다. 그랬더니 사법고시 책을 사 달라는 거다.
2년 전 이 곳에 왔을 때 대통령이 되는 법에 대한 책을 사 달라더니 말이다.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책을 사 주었더니 그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들의 유세장마다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엄마! 내가 볼 때는 클린턴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도 때문인 것 같아요. 10년을 기도했다는데 엄마는 내가 열한 살이니까 30년을 기도해 줄 수 있잖아요.
더구나 우리 엄마 기도는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시니까 내가 대통령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에요. 나는 다윗 왕 같은 대통령이 될 것예요. 우리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바꾸고 매일 10시는 나라를 위한 기도 시간으로 정하겠어요. 그러면 내가 형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된 거지요? 형들보다 엄마가 더 사랑해 줄 거지요?”
그런데 2년이 지나면서 아들의 목표가 변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아빠와 엄마에게는 대통령이 최고가 아닌 것 같았나보다.
이번엔 왜 사법고시여야 하는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은 아버지 같은 목사님이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은 형이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형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우리 에선 목사님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형들과 누나는 공부를 잘해서 자기는 도저히 못 따라가니 공부는 해보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은 그동안 남모르게 이렇게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혹시 부모님의 사랑을 형들에게 다 빼앗기지는 않을까? 그러면 목사님보다 부모님이 더 좋아할 만한 직업은 무엇인가?’
“웅아!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해 주고 싶어요.”
“그래.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고 정했다면 롯데제과에서 빵을 만들든지 호떡을 만들어 팔든지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은 똑같은 거야.
의사가 되어서도 남의 고통을 고쳐 줄 수 있지만, 남이 아플 때 그의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으로 옆에 앉아만 있어 주어도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눌 수 있잖니? 너의 꿈을 그대로 가져라. 형은 형대로, 너는 너대로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될 거다.”
아들은 그 날부터 무엇을 할 때마다 물었다.
“엄마! 하나님 일 하려면 컴퓨터도 잘 쳐야지?”
내가 “그래”하고 끄떡이기만 하면 그 아이는 무엇이든 열심을 냈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아들에게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 고민은 성적이었다.
“엄마! 40등이라는 것만 생각하면 힘이 다 빠져요. 어떻게 해야 2학년 때 1등을 할까? 나는 죽어도 1등은 못할 거야.”
“형은 고등학생이니까 1등을 하는 거야. 너는 중학교 1학년이니까 1등할 필요 없어. 2학년 1학기엔 35등까지만 하자.”
“35등? 그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아들은 2학년 1학기에 32등을 했다. 그 성적표를 받아 온 날, 우리 집에선 케익에 불을 켜고 축하를 해주었다. 신바람이 난 아들은 형들과 누나, 아빠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다음 학기엔 30등!” 하면서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약속했다.
학기가 바뀌고 학년이 거듭될수록 아들은 목표를 5등씩 줄여갔다.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최종 등수는 3등이었다. 대학에서는 형의 성적을 앞지르고 전 학년 장학금을 받았다.
아들은 가슴속에 또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 갈 것이다. 아들은 이미 목표를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 가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일에 점진적이라는 비밀이 가장 힘이 강하다고 본다. 우리는 무엇이든 한꺼번에 빨리 얻으려고 한다. 기다리고 참으며 한 걸음씩 꾸준히 걷는 길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든지 단번에 주실 수 있는 가나안 땅을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다하게 하면서 조금씩 점진적으로 주셨다. 그 이유는 한꺼번에 가나안 땅 거민을 쫓아내어 그 땅을 주면 땅은 황폐하고 사나운 들짐승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뜯으며 괴롭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