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소망의 능력을 붙잡아야 한다
로마서 8장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8장은 1장에서 7장까지 전개해온 이야기의 결론과 같은 부분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지루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간혹 믿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기쁨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찬 시간도 있지만 23절의 말처럼 이 땅에서 성도의 삶은 탄식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아직 몸의 속량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육신은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그를 유혹하고 조롱하기 때문에, 마치 절벽 끝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반대편 끝까지 오직 주님의 손을 붙잡고 외줄을 타고 가는 것처럼 어렵고 무섭습니다.
자기 손을 붙잡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는 평안하지만 세상을 볼 때는 낭떠러지처럼 아찔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성도는 그 때마다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의 탄식을 잦아들게 하는 것은 소망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소망은 무언가를 바란다는 세속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중에는 영생과 비교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무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소망은 오직 보이지 않는 것을 주님의 약속을 믿고 바랄 때에만 진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말할 때는 ‘희망’이나 ‘욕망’이라는 단어를 써서 하늘의 소망과 구별하는 것이 바울이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성도라면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 것이고 정말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산다면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탄식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기쁨은 우리에게 생소한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가졌던 기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기쁘게 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제게도 그런 기간이 몇 개월 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그 기쁨에 대해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줄 만한 실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가 있었는지…
가난했습니다. 아내가 일을 해서 제 학비와 살림을 충당했습니다. 노래하려고 미국에 왔는데 기도하느라 목이 항상 쉬어 있었어요. 그러니 앞으로 뭐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태에서는 걱정을 하고 한숨을 쉬는데 성도는 기뻐합니다. 왜 기쁠까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은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소망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기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을 참는다는 느낌조차 없습니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 내리막길은 평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파른 언덕길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평지라도 소망이 얼마나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느냐에 따라서 내리막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산을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망의 힘입니다.
우울증에 빠진 유명한 배우가 이런 인터뷰를 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다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테니까요”
이렇게 유명한 사람과 부자들 중에는 큰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명이고 가난한 시절에서 가파르게 그 인기와 부가 올라갈 때에는 그것이 소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다가 문득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며 절망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지게 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분명할수록 가난도 부유하게 느껴지고 세상에서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이 두려워 종 노릇하던 사람이 이제는 꺼져가는 육신의 생명이 오히려 더 소망이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도 소망의 능력을 붙잡고 참고 기다리며 오직 순종하는 하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