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민수기 25장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예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발람이 회개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데 왜 그가 이스라엘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성경의 여러 곳에서 저주 받은 선지자의 대명사가 되었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한 것이 무의미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습니다.다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하다 답을 찾았습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수기 31:16)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2:14)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냥 집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락에게 어떻게 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는지 알려준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압 여인들이 그들을 유혹하게 한 후 우상에게 절하도록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릴 거싱라고 알려준 것이지요.

아마 그렇게 발락이 약속한 부귀영화를 받아가지고 갔을 겁니다. 성도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봉사든 선교든 주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세상에서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 말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고 우상숭배의 마지막은 비참한 멸망입니다. 잊지도 말고 타협하지도 맙시다.

25장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죄를 짓는 사람들 보면서도 쉬쉬할 때 비느하스는 단호하게 음행하는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인을 창으로 죽입니다

이 시대는 비느하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포하는 사람, 사람의 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남을 인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만 선지자 병에 걸려서 손가락질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충만한 비느하스가 필요합니다

25장 14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이며

두려운 것은 이 음행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의로운 행위만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음란한 행위를 한 사람들의 이름과 죄를 다 기록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26장 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이 때는 광야생활의 거의 끝자락이었습니다. 그러니 광야 1세대는 거의 다 죽고 2세대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처음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셀 때 그 수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으로 이천 명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불평과 원망의 반역, 우상 숭배의 반역으로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자비하시고 신실하셔서 그들을 동일하게 보존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을 향한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지키실 것입니다. 힘을 다해 주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서 하나님의 손 아래 보호하심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1. 발람의 교훈을 통해 탐심은 우상숭배라는 사실을 배우고 경계하게 하소서
  2. 하나님 앞에 음행한 사람이 아니라 의로운 비느하스로 기억되게 하소서
  3. 엄하게 이스라엘을 다르시렸지만 그들을 사랑으로 보존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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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딜레마

삼상 3:15 “사무엘이 …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하나님은 깜짝 놀랄만한 방법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음성이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인가”하고 의아해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강한 손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곧 섭리를 통하여 강권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만지시는 분은 다름 아닌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분이십니다. 당신은 발생하는 상황을 우연으로 봅니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분변합니까?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말하는 습관을 길러 보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연주곡이 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마다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경책은 징계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즉 경책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고백하는 자리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잊으셨나요? 누가복음 11:13절이었는지 아니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이었는지 헷갈리나요?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의 귀는 예리하여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것을 나의 “엘리 제사장”에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이 순~종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지는 부분입니다. 나는 내게 가장 가까운 “엘리 제사장”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하나님을 불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에게 말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쩌면 당신의 “엘리 제사장”에게 아픔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의 고통을 막으려다가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방치해물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오른 손을 잘라내지 않고 눈을 뽑으려 하지 않다가 당신의 생명마저 잃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조언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만일 조언을 얻으려 하면 당신은 거의 언제나 사탄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중에서

끝없이 지루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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