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주검이 있는 곳에 모이는 독수리
마태복음 24장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불신자들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느냐고 항의를 하지만 우리는 이 진리를 먼저 가슴에 새긴 후에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제가 성경에 통달한 사람은 아니지만 일평생 성경을 묵상하는 기본자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진리라는 것을 믿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마치 수학에서 답을 미리 주고 검산하면서 수학공식에 대해 배우는 것처럼 성경도 우선 답을 먼저 가지고 그 다음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묵상을 하면 미혹에 빠질 염려는 그만큼 적어집니다.
물론 그런다고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풀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냥 그대로 믿고 천천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어느 순간에는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을 여지껏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자비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은 구원받을 자들을 위해서 그날들을 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환란 때에 멸망할 자들은 멸망하고 마땅히 구원받을 자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정확히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 때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기사와 이적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 때 바로의 술사들도 그렇게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의 그 많던 재산과 자녀들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는 힘과, 욥의 온 몸에 욕창이 나게 할 능력이 마귀에게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당연히 마귀는 병도 고치고 여러가지 기적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욥기에서 보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만큼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들을 묵상하면 아마 마지막 때에 어두움이 역사할 수 있는 때에는 마귀가 이런 능력들을 임으로 사용할 때가 온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이제껏 다닌 교회들을 보며 또 제 자신도 그런 것을 보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얼마나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언기도를 한다고 하면 바로 받은 후에도 기억이 안 날만큼 장황한 예언이라도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보통 기도회에서 기도 시작하면 5분 후에 나가던 사람도 한 시간씩 기다려서 그 예언을 받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가졌다는 분이 집회를 하면 다른 때는 그렇게 이단시비에 민감하던 사람들이 교회를 가득 메워버립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쉽게 마귀의 손에서 놀아나지 않겠습니까?
신비 중의 신비는 주님의 삶을 닮는 것이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여기에 온 마음을 붙잡아 두지 않으면 그만큼 미혹에 흔들리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예루살렘이나 뉴욕이나 서울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실 수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어느 곳이든지 마음대로 나타나시고 사라지신 그 몸으로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가짜들이 한 군데서 머물고 세상의 교통편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그러므로 어느 한 곳에 머물면서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들은 다 가짜입니다.
사람이 이런 가짜 그리스도들의 요설과 가짜 이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수리 중에서 사냥을 하지 못하고 시체만을 잡아먹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까마귀도 무서워서 싸우지를 못하고 오직 시체만을 먹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냥하는 동물이 아닌 청소동물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오직 죽음의 냄새만을 맡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생명이 남아 움직일 때는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생명에 일격을 가하는 일조차 하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성도에게 적용한다면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나 가짜 그리스도들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다 생명이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생명만 있다면 그것이 지극히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들에게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때의 경고는 여러가지지만 그 해결책은 아주 단순명료합니다. 오직 예수 생명으로 우리 안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가득 찬다면 주님을 위해 죽는 죽음마저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생명으로 사망을, 빛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는 능력으로 마지막 때를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